모든 사람에게는 국적이 있다. 누군가가 어느 나라의 공민인지를 증명하는 국적은 이민이나 망명과 같은 특수 사례를 제외하고는 출생의 순간에서부터 부여되는 것이 기본이다. 비록 태어난 그 사람은 태어난 국가와 명시적인 계약을 맺고 그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은 아니지만, 출생과 동시에 부여되는 국적을 바탕으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국가관을 만들어낸다. 국적은 이렇게 한 국가의 국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사람의 국가관이 온전히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국적은 원칙적으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를 증명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국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소위 국민국가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근대 교육문화의 상징인 의무교육제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의무교육을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익힌 청년들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국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게 된다. 과거부터 끊임없이 '국적 있는 교육'이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민이 정치에 진출하면서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특정한 이념을 중심으로 모여 설립한 것이 바로 정당이고, 그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오늘날 신문의 모태가 되는 '정론지'(政論紙)이다. 정론지는 기본적으로 특정 당파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했으나, 정당의 기본 목적이 국익을 도모하는 것에 있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정론지 또한 보도보국(報道報國)을 사시(社是)로 내건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이후 등장한 대중지, 소위 타블로이드지는 상업적 이익을 위해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 <산케이신문>이나 <환구시보>, <더 선>과 같은 극우 대중지의 사례에서처럼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질적인 목적은 언론사마다 다르지만, 여전히 다수의 신문 매체가 표면상으로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점은 언론은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19년 기준 세계 41위로 아시아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국민의 언론 신뢰도는 반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여 신문방송계의 큰 수치로 남게 되었다. 국민들이 언론의 태도에 실망하게 된 까닭에는 편향된 논조와 악의적인 기사 편집, 그리고 '대한민국의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도에 있다.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영국 공영방송인 BBC의 한국어 방송을 '대안 매체'라며 청취를 장려하는 게시물이 널리 번지고 있는 모습은 한국 언론의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물론 언론사마다 논조와 지향하는 바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또 논조의 획일화는 어떠한 정부에서도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가치이기는 하나,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언론사의 국적을 부정하는 논조를 지닌 매체를 과연 국민국가의 표현기관이라 할 수 있을까.

Posted by 일간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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