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적인 빈곤국이자 독재국가로 악명 높은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미의 대표적인 부국이었다. 정치적으로는 1958년 푼토 피호 협정 이래 대의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했고, 석유 수출을 바탕으로 국민 소득 수준 또한 높은 축에 속했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 불 가량으로, 같은 시기 한국은 1천 불 달성조차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베네수엘라는 당시 세계 경제 순위 2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으로, 석유 판매를 통해 얻는 국고 수입과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세계의 모범 국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액이 크게 감소하였고, 이는 국고 수입에 큰 타격을 입혔다. 베네수엘라는 1989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당시 대통령 페레스는 금융 지원을 조건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수용하게 된다. 주요 공기업이 민영화되었고, 경쟁력을 명분으로 공공 서비스의 가격을 크게 인상했다. 특히 버스 요금이 하루 아침에 2배로 오를 정도로 신자유주의 경제제도의 폐해는 심각했다. 참다 못한 수도 카라카스의 시민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경제파탄에 분노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나, 군을 동원한 페레스의 강경 진압으로 수천 명이 죽고 다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현대 베네수엘라의 역사를 뒤바꾼 '카라카소 사건'이다.

 

 

 

 

이 사건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반기를 든 민중운동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좌익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된 한 원인이 되었다. 훗날 혁명의 지도자이자 반미운동의 선봉이 되는 우고 차베스는 군 복무 당시 발생한 카라카소 사건을 계기로 페레스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하였다 실패함으로써 일약 전국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2002년 보수 우익 진영에 대한 차베스 탄핵 시도가 민중파업으로 무산된 이후 온건 진보에서 급진 좌파 포퓰리즘으로 정책 노선을 선회함으로써 베네수엘라를 대표적인 좌파 국가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언론의 자유와 사법권의 독립이 심각하게 침해당했고, 경제정책 또한 안정된 산업 기반 구축 없이 석유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21세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내건 차베스는 복지정책을 실시해 빈곤율을 낮추는 등 여러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경제와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대중인기영합주의로 스스로의 권력을 확대하는 데 골몰해 오늘날 정치경제적인 혼란을 낳은 한 주범이 되었다. 현실적인 정책 모색과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이 없는 차베스의 좌파 포퓰리즘은 베네수엘라를 세계 최악의 빈국으로 전락시켰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에 대한 일부 강남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국민의 전반적인 소득의 질을 향상시켜 소비와 저축의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며 종래의 낙수효과를 주장하고,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되어 건전한 조세 납부와 무노동 이윤에 대한 사회적 균점을 거부하며 "나라가 니꺼냐"라는 격한 구호로 정부에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의 양극화는 사회갈등을 심화해 왔으며, 그 극에 속한 빈민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 민란으로 국가나 정부가 전복되고 혁명의 광기가 몰아쳤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배워왔다.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과 부동산 조치는 부의 양극화를 억제함으로써 언젠가 일어날 지도 모르는 민중의 반란과 좌파 포퓰리즘의 득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만일 강남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부동산을 바탕으로 사회적 계급을 형성해 양극화 속에서의 이익 독점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면, 그리하여 부익부 빈익빈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까지 다다르게 된다면, 이들은 베네수엘라처럼 이 나라를 좌파 포퓰리즘의 광기로 몰아넣을 정치인의 등장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 될 것이다.

 

Posted by 일간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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