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언론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과거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전민족적인 항쟁'이라는 독립운동의 범위 내에 한정돼 있었던 것에 비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조명된 3.1운동에 대한 접근법은 '민주공화국의 출발'이라는 민주사적 관점에서의 해석이 보편화되었다는 데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임시정부 또한 대한민국 공화국 건국사의 시원으로서, 국민주권의 상징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새롭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헌법 전문의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 구절이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되고, 이것이 학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은 전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대된 것과는 달리, 3.1운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규모 독립운동'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남아있는 듯 하다. 한국 역사학계를 혼란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건국절 논쟁' 또한 그 반대론에 대한 역사적, 법률적 근거를 헌법 전문의 '임정 법통'에서 주로 찾았을 뿐, 임정을 낳은 3.1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삼일절 축사에서처럼, 임정 법통의 구절은 그 앞의 3.1운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역사성과 법적 정통성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 논할 때, 3.1운동의 전개와 의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1운동은 실패한 운동이 아닌, 대한민국의 건국을 잉태한 '성공한 혁명'으로 봐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로 3.1운동의 원 목적이 즉각적인 독립 쟁취에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3.1운동을 통해 즉각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3.1운동의 의미에 대해서는 숭고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운동의 진압'이라는 결과만을 추종하여 '실패한 것'으로 평가절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우리는"역사학자들은 성공숭배자들이어서, 당장에라도 소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곧장 실패로 간주한다"는 쉴레진저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역사학에는 '지체된 성공'(Delayed Achievement)라는 개념이 있다. 당장에는 목적 달성에 실패한 듯 보여도, 그것이 연이은 사건에 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 그 소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장기적으로 영향을 준 사건에 대해서 이 용어를 사용한다.

 

3.1운동이 바로 그러한 '지체된 성공'에 속한다. 우선 3.1운동의 목적부터가 그러했다. 33인 지도자 손병희 선생은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겠다"며 3.1운동 직전 천도교 간부들에게 말한 바 있다. 즉, 3.1운동은 독립국 건설을 위한 첫걸음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그리고 우리 민족은 손병희 선생의 말씀대로, 독립정신을 간직한 끝에 8.15 해방과 3.1정신에 따른 정부 수립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3.1운동이 성공한 첫 번째 이유다.

 

둘 째로 3.1운동의 결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데 있다. 3.1운동은 그 초기부터 독립 건국을 주도할 민주공화제의 임시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이는 조선독립신문 및 각 지역의 전단에서도 드러난다. 3.1운동의 영향으로 발족한 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선포하고 5천년 역사상 최초로 삼권분립의 민주공화제를 천명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왕정 복고는 완전히 타도되고 민주공화국 건설이 한국 독립의 최고 당위로 설정되었다. 한국 민주 헌정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할이 과소 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고, 임시정부 또한 3.1운동 없이는 그 의미를 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수 친일 반동 분자와 극단주의적인 공산 좌파 세력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독립운동가들과 민중들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을 숭상하고, 이 운동의 정신에 입각해 독립국을 세우는 데 압도적으로 찬동을 표했다는 데 있다. 역사적 사건은 후대 사람들의 의미 부여와 기억 활동을 통해 그 정체성에 활력이 불어넣어지고, 이를 통해 과거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돼 미래로의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된다. 대한민국 건국으로의 길잡이가 바로 3.1운동이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3.1절을 겨레의 명절로 성대하게 축하했다는 사실과 공산 좌파 진영에서조차 3.1절에 맞추어 인민정부 수립을 선포할 계획을 마련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1948년 제헌 국회 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나라의 정통성을 3.1운동의 독립선언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 동의를 표하고, 3.1정신을 건국정신으로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을 우리 국민이 또한 승인했다는 데 있다. 국민의 기억과 지지 속에 국가의 출발로서 공인받게 된 3.1운동, 그 의미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8.15 광복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광복이 3.1운동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15 광복은 3.1운동에 따라오는 것이다. 3.1운동이 있음으로 해서 8.15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고, 8.15 광복이 있음으로 해서 3.1운동은 성공의 영역에로 들어올 수 있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광복 75주년을 목전에 둔 우리들은, 광복의 감격을 있게 해준 3.1운동의 위대한 역사적 의의에 경의와 축복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3.1절을 겨레의 대축제일로 맞이하는 것으로 현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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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18. 22:48

반만년 동안 여러 임금들께서 피땀을 흘려가며 지키고 보전한 금수강산을 강한 이웃나라의 침탈을 받아 빼앗긴 것이 마치 비둘기가 까치의 둥지를 차지한 꼴이 되어 버렸다. 반만년 동안 그 할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비호와 사랑스런 보살핌이 이어져 대가 내려갈수록 번성했던 신성한 후손들이 남에게 무참하게 짓밟히고 결국에는 주인의 자리까지 빼앗기는 수치를 겪게 되었다.

아! 슬프도다. 우리들은 충성스럽지 못한 백성이 되어 버렸고 온당치 못한 자식이 되어 버렸다. 무슨 생각으로 천지신명께서 감응하여 나타나시기를 바랄 것이며, 무슨 낯짝으로 지하에 계시는 돌아가신 조선 사람들의 영혼을 뵐 것이며, 무슨 염치로 여러 독립국의 자유민들을 대할 것인가?

 

다행히 옥황상제께서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시고 오랜 옛날부터의 조상의 영혼들이 저승에서 도와주시어 드디어 광복의 운세와 부활의 기회가 찾아왔다. 부끄러움을 머금고 욕됨을 참으며 10년 동안 마음 속에 칼을 갈아온 우리 이천만 동포는 우리들의 자유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세계에 통쾌하게 선포하고 있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세계의 눈과 귀를 놀라게 했다.

우리들의 행동이 문명적이고 정의로왔기 때문에 세계 여론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일찍이 없었던 문명적인 싸움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완고하고 사나우며 도의라고는 모르는 저 적들은 도리어 우리 정의의 군대를 폭도라고 하면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우리 형제자매 가운데 사상자가 만여 명이나 되고 철창 속에서 해를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또한 얼마인가? 무릇 자유의 대가는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우리들은 세계에 대해서 조국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면해 보려고 한다. 비록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동포여! 유린되었던 강토를 회복한 이 날, 천만년 기념해야 할 이 날, 우리 형제는 이 날을 경축하면서 우리의 의로운 용기를 다시 발휘할지어다.

실행규약

1. 남녀 학생의 휴교는 물론 우리 동포는 일제히 자유롭게 만세를 외칠 것

1.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을 것.

대한민국 2년 3월 1일

대한민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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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어느 방송사도 중계하지 않은 씁쓸한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기공식이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 '화합과 단결', 그리고 '인류애'를 가져다 주었으며,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였음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할 것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축사에서처럼, 임시정부는 반일독립을 넘어 자유평등, 총화단결, 인류공영의 가치를 추구한 민주공화국의 뿌리이자 법통이었다.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대내외에 천명된 지 어느새 101년, 독립과 산업화, 민주화의 100년사를 마감하고 이제 새로운 조국의 2세기로 나가는 도상에서, 우리는 새 시대를 개척할 첫걸음으로 총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임시정부의 정신과 가치는 단순히 독립건국이 제일(第一)의 과제였던 대일항쟁기를 넘어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사료된다. 임시정부의 국시였던 삼균주의는 개인과 개인의 평등, 민족과 민족의 평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추구하며 세계 여러 나라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지향했다. 참정권을 폭넓게 보장하여 정치적으로 균등을 실현하고,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의 통제, 중소산업의 민영화로 경제적 기회의 균등을 이루고, 국비 교육을 통해 누구나가 배움으로써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코로나19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신자유주의의 광란 속에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부(富)에 따른 신 계급제가 등장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임정 선열들이 내세운 인류공생의 가치와 만민평등의 정신은 더욱 절실한 '오래된 미래'다.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대한민국의 주류라는 구절은 새 시대의 국회가 받들어야 할 국가의 정체성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다. 지난 건국 101년의 역사는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헌법과 정부를 수립하고, 국민의 역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빛의 역사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헌법은 반민특위의 해체와 부일배(附日輩)의 집권으로 더럽혀졌고, 군사독재 하에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억압받았으며,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빈부격차는 날로 심각해지고 청년은 절망과 무의욕 속에 경제 계급제에 물들어갔다. 임시정부가 지향했던 가치와는 정반대로 나갔던 지난 날의 모습은 국가정체성의 위기 그 자체였다. 이번 총선거가 국체(国体) 수호의 선거인 이유다.

 

이번 총선거는 임시정부가 그린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구현할 일꾼을 선출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제시한 자유평등과 평화번영이라는 국체의 가치를 수호할 것인가, 아니면 친일·군사독재 세력의 반국가(反国家) 이념을 확산시키고 조국의 뿌리를 뒤엎을 것인가. 코로나19 속 흔들림 없는 방역과 민주주의의 수호로 세계를 이끄는 선두가 된 대한민국이 나갈 길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현명한 애국 국민들은 정로(正路)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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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1주년 되는 날이었다. 봄바람이 이는 춘4월 아침, 코로나19로 인해 예년과는 달리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역사의 주역"임을 강조하였고, 임시정부 기념관 설립의 당위는 임정 독립운동가들이 지향한 '자유 평등', '통합', 그리고 '인류애'의 가치를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함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오늘날 사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던져주었다. 그의 말대로, 임시정부의 목적은 단순히 반일 독립이 아니었다. 인간의 존엄을 본질로 하는 자유와 평등, 성별, 나이, 빈부, 지역을 넘어선 국민의 화합과 통합, 인류 문명에 공헌하는 인류애의 회복, 그것이 바로 임시정부가 지닌 역사적 의의인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민주공화제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이다. 3.1운동의 민의를 받들어 임시정부를 수립한 애국지사들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선포하고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임정은 여러 고난 속에서도 임시헌법과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따른 정당 정치를 수행했고,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큰 자산이 되었다. 임시정부의 헌장과 강령은 1948년 제헌 헌법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오늘날 민주 헌정의 기원이 되었다. 헌법 전문의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은 민족사관을 넘어 민주사관까지 함께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정의 의의는 독립과 정부수립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은 <3.1혁명 정신 해석>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3.1운동의 핵심 정신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한민족의 독립과 전 인류의 공동생존을 위한"자존과 공존"이요, 둘째는 계급과 당파를 넘어선 "민주와 단결"이요, 셋째는 권세에 굴하지 않고 가난에 무너지지 않는 "기개와 도의"며, 넷째는 대단결을 위한 "자신감"이었다.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3.1운동의 정신은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이기도 했다. 임정의 국시였던 삼균주의는 최종 목표를 세계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세계일가"였으며, 정치적 기회의 평등과 개인과 개인 간의 차별 폐지를 주장했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누구나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세상 또한 임시정부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공정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 세계 인류와 더불어 사는 세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목적은 실로 이것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임정의 역사는 자유와 민권, 평화를 위한 겨레의 역사요, 즉, 대한민국이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길잡이다. 인류의 역사가 자유와 인권의 확대라는 진보의 역사인 이상, 우리나라의 최종 목표가 남북이 하나 되는 진정한 통일민주공화국의 건설인 이상, 임시정부는 이전부터 그래왔고 오늘날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만대에 지속될 조국의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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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2. 23:12

우리 근대사의 정점이라 할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의 분위기가 이렇게 무관심해도 되는 것일까.

 


3.1정신의 계승이야말로 정부의 정신적 지주가 돼야 한다. 간단히 기념식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미리미리 각종 기념행사가 준비돼 3.1정신이 계승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로 유도해야 한다.

 

 



- 퇴색해가는 3.1절 (1982.03.01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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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2. 01:04

아! 경사로다! 건국의 기념일이여! 반도강산 이천만 민족의 생명은 이 날부터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날이 다시 돌아오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지 않을 수 없다. 굽히지 않는 열성과 꺾이지 않는 충정으로 원수의 엄혹한 단속에도 굴하지 않고 찬란하고 위대한 활동을 위하여 축하해야 할 것이다.

아는가? 3월 1일이 무슨 날인지? 그러면 1일부터 2일까지 휴교하라.

 

대한민국 2년 2월 27일

혈성단 알림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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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3. 31. 23:31

(一) 

 

요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개인은 족보를 뒤져보고 국가는 역사를 파헤지면서, 도대체 나와 우리가 어디서 나왔는가를 열심히 알아보려 한다. 그래야자기 신원을 알 수 있고, 그것을 알아야만 주체성이란 것을 세울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옳은 말이고 만시지탄마저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 문제를 너무 상고사적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있다. 우리의 오늘을 알려면 단군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근대 민족주의나 근대 시민사회론이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는 오늘의 우리 시대는 단군보다는역시 3·1운동에 접목시키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3·1운동은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적인 민족—민주—공화주의의 대중적인 국권회복 운동이었다.

일제에 항거하여 국권을 회복하자고 한 뜻에서 그것은 민족주의 운동이었다.그러나 그 국권회복은 봉건적 전제군주제인 대한제국의 복벽론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민주 국가에의 지향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18세기 서구의 시민사회론과 20세기 초 아시아 민족운동이 하나로 통합된 자주적 국민국가에의 지향이었다. 이 봉기의 결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그 이념과 헌법은 우리 역사 최초의 민주공화제를 탄생시켰다.

(二)

임정은 그 후 해내외의 모든 항일독립운동을 총망라하는 역할은 다하지 못했다.그러나 3·1운동과 임정이 표상한 제(諸)지표는 오늘의 시점에서 볼때도 우리 진로의 출발점이요, 목표점이다.

그런데도 3·1운동은 세월이 지날수록 마치 먼 태고 시절의 전설인양 빛을 잃어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곧잘 국민정신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곤 한다. 정신교육의 자료로는 흔히 상고(上古)—중세(中世)—조선조(朝鮮朝)의 복고적인 국수론이 들먹여지기도한다.그러나 정작 오늘의 정통성이 연원하는 3·1운동 이래의 근대적인 민족—민주—독립운동은 역사 교과서의 부록이나 추기 정도의 대우 밖엔 받지 못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연구가 안돼서 그런 것인지, 확실한 까닭은 잘 모르겠으나 어떻든 주마간산격의 설명에 볼과했다. 그러고서 어떻게 2세들에게 국민정신교육을 시킨다는 것인지, 단군이 실제의 사실로 가르쳐지는데 왜 항일사와 3·1운동이 그렇게 간략하게만 다뤄져야 하는가.

요즘 학생들은 아마 서양사 르네상스기의 3대 예술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것이다. 그러나 3·1운동의 자세한 경위와, 6개의 임정이 한개의 상해 임정으로 통합되기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아는 학생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정신교육은 바로 그런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정통성의 맥락이요, 뿌리이며 이상이기 때문이다. 보도에의하면 파고다공원을 사적지로 만들자는 논의가 있다 한다. 그러나더 기본적인 것은 각급 학교에서 3·1을 전후한 근대 민족운동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일이다. 3·1절 기념식도 마땅히 근대 민족운동의 원년으로서의 「대축전(大祝典)」으로 재인식되지 않으면 안된다.

1983년 3월 1일 <조선일보> 사설

출처 : 조선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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