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개떡찰떡2020. 4. 27. 14:09

 

《개떡》 나는 親与언론과 시민단체의 「국민밉상」 만들기 전략에 희생된 사람 - 나경원 前 미래통합당 의원

 

《찰떡》 반민특위로 국론 분열 운운하는 土倭 非国民에 인상 안 찌푸려지면 그게 어디 국민이겠소? 

 

 

 

 

「개떡찰떡」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촌철살인 한줄논평

Posted by 일간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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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윌리엄 베버리지라는 이름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한 명이 전시내각을 이끌던 처칠 수상 앞으로 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 영국노동조합총연맹의 건의로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결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함을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5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해야 함을 주요 가치로 내걸었다. 이 보고서는 발행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전 국민의 95% 이상이 그 내용을 접하게 될 정도로 큰 명성을 얻었으며, 당시 수상이던 처칠은 연설을 통해 전쟁 후 새로 수립되는 정부에서 베버리지 보고서에 입각한, '요람부터 무덤까지 아우르는 복지 정책을 실현'할 것을 천명했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노선에 따라, 처칠 재임 중 학교 급식과 공공 주택 보급 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었고, 처칠의 뒤를 이은 노동당의 애틀리 내각은 가족수당제도와 국영보험제도, 토지 임대 통제법 등 여러 사회보장제도를 입안해 영국을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늘날 영국이 자랑하는 국영의료보험 NHS는 이 시기에 확립된 것이다.

 

마가렛 대처 이후 영국의 복지체제는 과거보다 그 명성이 많이 바라긴 했지만, 오늘날 영국 복지사회의 발전 과정에는 보수주의 정당인 <영국 보수당>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세기 중후반 보수당 소속 수상이었던 디즈레일리는 노동자 주거 개선법, 공중보건법 등을 제정해 노동자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 앞장섰으며, 1867년에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다수 도시 근로자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2차 대전 이후 집권한 맥밀런 수상은 고아 연금과 노령 연금 지급을 확대했고, 주당 근로시간을 48시간에서 42시간으로 축소하는 등 전후 영국의 부흥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처의 신자유주의 이전까지, 영국 보수당은 영국을 유럽의 대표적인 사회 강국으로 이끈 수권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수(保守)란 오래된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철학으로써의 보수주의는 '수구'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정치철학에서의 보수주의는 전통과 관습을 지지하되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사회를 완전체에 가깝게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구체적인 제도와 관습을 유지하되, 자유로운 민주사회를 향해 점진적인 개혁을 하는 것을 보수주의의 가치로 내건 바 있다. 보수주의의 원래 가치는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해 나가는 점진적인 변혁 과정을 지지하는 것이다.

 

최근 미래통합당의 내분이 심상치 않다. 기존의 아스팔트 우파 - 수구주의에서 탈피해 보수주의의 새로운 가치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보수주의를 내거는 이들의 주장도 가만 살펴보면 사회복지나 부의 재분배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다분하다. 헌법의 임정 법통이나 남북평화통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비춘다. 통합당이 당사에 초상화까지 걸어가며 당의 원류로 존경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의료보험제도와 토지공개념 제도의 도입을 논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전 국민에게로 확대하고 영구임대주택사업을 실시하는가 하면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방 정책을 실시해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법통으로 선언하고 영화와 음악에 대한 사전심의제를 폐지하는 등 개방된 문화산업의 문을 열었다. 통합당이 보수주의의 가치를 내세운다면, 한국판 처칠, 맥밀런, 디즈레일리를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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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어른들은 투표장에만 갔다 하면 한나라당을 찍었고, 민주당을 향해선 '전라도당', '빨갱이'라는 험한 말을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민주당계 정당은 부산에서는 30% 정도 득표하면 선방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험지 그 자체였는데, 소위 낙동강 벨트라 불리는 북강서을 선거구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보수 도시' 부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부산의 선거史를 돌이켜 본다면 부산이 '보수 도시'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근 3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90년 삼당 합당 이전까지만 해도 총선거가 열리면 부산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이 언제나 신승을 거두었다. 특히 중선거구제하에서 선거가 치러진 1985년에는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호남 지역에서조차 스무 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는 단 세 석밖에 얻지 못하는 참패를 겪어야만 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총선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전체 15석의 의석 가운데 14석을 민주당이 싹쓸이할 정도로 부산은 민주당 계열에 우호적인 도시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부산은 4.19 의거, 부마항쟁,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에 있어 선두에 섰던 대표적인 야도(野都) 중 하나였다. 결국, 부산이 오늘날과 같은 보수의 도시가 된 것은 삼당 야합이 초래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6년 총선거는 보수화된 부산의 정치 지형을 뒤흔든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다섯 명이나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부산의 민심이 더이상 한나라당계 정당에 압도적인 표를 주지 않으며, TK와 같은 '텃밭'에서 '캐스팅 보트'라는 새로운 승부 지역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당계 정당이 부산에서 얻은 득표율은 낮게는 20%대에서 평균 30%대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부산에서의 민주당 의원의 당선은 '보수 도시' 부산의 시대도 어느덧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산은 민주당에 단 세 석의 의석만을 안겨주었다. 다섯 명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배출된 20대 총선과 비교하면 오히려 '퇴보'한 면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약간 다르다. 비록 의석수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민주당 후보가 부산에서 여럿 당선됐다는 점은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다수의 지역구에서조차 평균 40%대 이상의 표를 얻은 것은 민주개혁진영에 대한 부산 시민의 열망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를 '부산의 재보수화'로 단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산 지역에서 패배한 데에는 가덕도 신공항과 같은 부산 지역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민주당 정부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대형 상권 지역의 경기 침체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민주당 정권이 부산에 그만큼 공을 들인다면 민심이 다시 민주당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군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야도 부산'의 저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 저력을 키워 부산을 새로운 민주개혁진영의 선봉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민주당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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