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어느 방송사도 중계하지 않은 씁쓸한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기공식이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 '화합과 단결', 그리고 '인류애'를 가져다 주었으며,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였음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할 것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축사에서처럼, 임시정부는 반일독립을 넘어 자유평등, 총화단결, 인류공영의 가치를 추구한 민주공화국의 뿌리이자 법통이었다.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대내외에 천명된 지 어느새 101년, 독립과 산업화, 민주화의 100년사를 마감하고 이제 새로운 조국의 2세기로 나가는 도상에서, 우리는 새 시대를 개척할 첫걸음으로 총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임시정부의 정신과 가치는 단순히 독립건국이 제일(第一)의 과제였던 대일항쟁기를 넘어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사료된다. 임시정부의 국시였던 삼균주의는 개인과 개인의 평등, 민족과 민족의 평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추구하며 세계 여러 나라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지향했다. 참정권을 폭넓게 보장하여 정치적으로 균등을 실현하고,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의 통제, 중소산업의 민영화로 경제적 기회의 균등을 이루고, 국비 교육을 통해 누구나가 배움으로써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코로나19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신자유주의의 광란 속에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부(富)에 따른 신 계급제가 등장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임정 선열들이 내세운 인류공생의 가치와 만민평등의 정신은 더욱 절실한 '오래된 미래'다.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대한민국의 주류라는 구절은 새 시대의 국회가 받들어야 할 국가의 정체성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다. 지난 건국 101년의 역사는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헌법과 정부를 수립하고, 국민의 역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빛의 역사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헌법은 반민특위의 해체와 부일배(附日輩)의 집권으로 더럽혀졌고, 군사독재 하에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억압받았으며,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빈부격차는 날로 심각해지고 청년은 절망과 무의욕 속에 경제 계급제에 물들어갔다. 임시정부가 지향했던 가치와는 정반대로 나갔던 지난 날의 모습은 국가정체성의 위기 그 자체였다. 이번 총선거가 국체(国体) 수호의 선거인 이유다.

 

이번 총선거는 임시정부가 그린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구현할 일꾼을 선출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제시한 자유평등과 평화번영이라는 국체의 가치를 수호할 것인가, 아니면 친일·군사독재 세력의 반국가(反国家) 이념을 확산시키고 조국의 뿌리를 뒤엎을 것인가. 코로나19 속 흔들림 없는 방역과 민주주의의 수호로 세계를 이끄는 선두가 된 대한민국이 나갈 길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현명한 애국 국민들은 정로(正路)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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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은 금물이건만, 결국 사달이 터지고야 말았다. 코로나19 자가격리 대상자인 이들이 당국의 지시를 무시한 채 무단 외출을 감행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집단 감염의 가능성을 낮추려 관민 모두가 노력하는 와중에, 일순간의 쾌락을 위한 일탈로 탄탄한 국가 방역망에 흠집을 내려 한 것이다. 악의적이었건 아니었건, 사회 안전을 해치려 한 시도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고 있다.

정부 또한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당국의 지시를 무시한 채 무단 외출을 할 경우 최대 징역 1년, 또는 1천만 원 미만의 벌금형이라는 엄형에 처하고, 오는 5월경으로 예정된 재난기본소득 또한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자가격리 앱을 켜둔 채 외출하는 '꼼수'를 차단하고자 무작위 현장 점검 또한 확대될 예정이다. 정부의 이러한 대처에는 당장의 욕구 충만을 위한 '작은 자유'로 인해 코로나19의 성공적인 방역과 안정된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라는 국민의 '큰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을 공공선의 차원에서 묵과할 수 없다는 배경 인식이 기저하고 있다.

자유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의 구속이나 압력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의 구속과 압력을 오늘날 국가공동체에서 찾자면 정부 행정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이런 정부 행정력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작은 자유', 또는 '소극적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사전에 언급된 자유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남에게 구속당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같다. 다만 전제 조건으로 '법률의 범위 한도 내에서'가 붙는다. 법률은 국민이 자신이 속한 국민공동체를 유지, 통합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합의를 통해 만든 공공 계약이다. 이 계약은 국민의 삶을 옥죄는 측면도 있으나, 그 옥죔은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안녕과 고른 행복추구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구속력과는 차이를 지닌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한 "꽃을 꺾을 자유가 아닌 공원에 꽃을 심을 자유"는 공공의 행복과 국가공동체의 수호를 위한 자유, 즉, '큰 자유', '적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일제강점기를 '축복'이라 찬미하며 제국주의를 미화하거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통해 성립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부정, 폄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일관되게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자신의 반사회적, 반헌법적인 발언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개인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헌법이 제공하는 작은 자유를 헌법 정신과 반국가세력, 반민주주의 세력에게까지 일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결국 공화국 체제 스스로를 붕괴의 길로 몰아넣은 바이마르와 나치의 사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자가격리 수칙 위반이라는 '작은 자유'로 인해 방역 성공이라는 '큰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처럼, 민주공화국의 질서와 정체성 수호를 통한 정치적 평등이라는 '큰 자유'를 위해서는 헌법의 독립,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 폄하하고 반국체적인 발언을 할 '작은 자유'는 마땅히 제한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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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0월 23일, 독일 연방정부는 니더작센주를 연고로 한 한 정당을 불법화했다. 이 정당의 정체는 2차 대전 이후 잔존한 나치당의 지지 세력이 과거로의 회귀를 도모하고자 창당한 <사회주의 제국당>. 독일 정부는 이 정당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헌법에 보장된 복수정당제를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지도자 원리를 추종하며, 당의 강령이 독일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을 경시함을 근거로 들어 정당을 해산하고 불법으로 선언하였다.

 

국체를 수호하기 위한 독일의 시도는 위에서 그치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내무부 산하에 연방헌법수호청이라는 기구를 두고 있는데, 당시로써는 가장 선진적인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나치당에 의해 몰락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설립한 정보 기구다. 1949년 연방 정부가 채택한 <독일 기본법>의 헌법 정신에 위배되거나 또는 헌법 질서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극단주의 집단에 대한 법적 감찰과 단체 해산, 직위 해체 등의 조치를 담당하고 있으며, 네오 나치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과 구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인 <좌파당> 또한 헌법수호청의 감찰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외에도 형법 제86조를 통해 독일의 국체를 부정하는 상징물(주로 나치즘과 연관돼 있음)의 사용과 국체를 부정하는 선전·선동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이러한 독일은 헌법학계에서 '방어적 민주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해하는 사상, 발언에 대해 민주주의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이들 사상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함을 가치로 내세우는 정치철학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독재를 배격하고 모든 국민에게 정치적 자유와 평등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나, 이러한 자유가 자유를 부정하고 탄압하려는 이들에게까지 주어짐으로써 역사 속에서 나치 독일과 같은 자유의 적을 창조한바, 방어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존속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지난 2013년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정당 판결로 해산된 것 또한 통진당의 강령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리가 작용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주경제> 신문에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매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 집회에 일장기와 욱일기를 들고 나타나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 고무하는 발언을 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인 정명희는 제주 4.3 사건의 양민 학살을 '폭동 진압'으로 정당화하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폭도'로 폄하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역사적 정통성을 잇고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체의 근원이다. 우리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방어적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독립과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1인 독재를 추종하는 반국가세력을 엄중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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