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어록2020. 5. 6. 16:42

오늘은 삼일절이다. 기쁜 날이다. 3·1운동 100주년이다. 매년 맞이하는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축일(祝日)이다. 3월 1일이 매년 경사스러운 이유는 100년 전, 온 민족이 일치단결한 그 날로 말미암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불행히도 대략 3·1운동을 기점으로 우리는 오른쪽과 왼쪽,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는 서로 갈등하면서도 각자 줄기차게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했다. 결국 우리 민족은 벅찬 가슴으로 광복을 맞이했다.

 

삼일절이 광복절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남북이 다시 하나 된, 통일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3월 1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3·1운동은 대한민국 건국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년 전 함성의 그날은 우리의 뇌리에서 가물가물한 날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

 

3.1절은 대한민국의 경사스러운 날, 한국 건국기념일이다 

 

집단 무의식 속으로 침잠한 삼일절을 의식의 세계로 다시 불러올리기 위해, 그리고 3·1운동이 우리 민족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위해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과 미래융합연구원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가 25, 26일 양일에 걸쳐 ‘민주공화 100년, 세계시민 100년: 보편평화를 향하여’를 주제로 3·1운동 100주년 특별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했다.

 

 

3·1운동과 미국혁명을 같은 역사적 연장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3·1운동을 미국혁명과 연계했다. 이승만과 서재필은 제1차 한인대회(1919년 4월 19일)의 장소로 필라델피아를 선택했다. 미국혁명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인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한인대회 참가자들은 대륙회의와 제헌회의가 열렸던 미국 독립기념관으로 행진했다. 이승만은 독립기념관에 있는, 조지 워싱턴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은 매우 유명하다.”

 

 

미국혁명에 가담한 미국인들은 총을 들었다. 3·1운동은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왜 그런 차이가 났는가.

 

“상황이 달랐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영국의 미국 지배보다 훨씬 엄혹했다. 미국 주둔 영국군은 그 숫자가 많지 않았고 서로 떨어져 있었다. 한국인들은 무기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적인 시위는 선택의 산물이자 동시에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천도교·개신교·불교 지도자들의 합작이 3·1운동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세속화에 따라 3·1운동의 종교적 성격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3·1운동의 전체적인 성격이 종교적은 아니더라도, 3·1운동에 등장한 많은 수사(rhetoric)은 종교적이었다. 특히 미국 내 상당수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의 활동이 ‘크리스천 프로젝트(Christian project)’라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그들은 한국의 기독교와 일본의 ‘이교(異敎· paganism)’를 대비시키며 미국인들에게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호소했다. 당시 한국의 기독교와 개혁·근대화 운동은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출처 : 중앙일보 <김환영의 직격인터뷰>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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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29. 03:19

정통성 외면하면 「민주 목표」 달성 못해

 

주체성에는 개인의 자아를 바탕으로

 

3·1- 4·19정신으로 되돌아가 소외감 없는 「자유 있는 복지 국가」 로 키워야

 

 

중국 땅서의 태극기 게양

 

일제하 중국 땅에서 몇몇 한국인들이 아침마다 국기를 게양했다고 한다. 그 청년들이 있던 곳은 중국군의 사관학교구 내였기 때문에 진짜 태극기를 게양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태극기를 게양하는 시늉을 하면서 조국애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태극기를 게양하던 한국인 청년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가슴 뿌듯해옴을 느낀다. 나라를 잃고 중국 대륙을 방황하던 우리 청년들의 망국의 설움이 그토록 크고 가슴 저린 것이었기에 나라를 다시 찾고 싶은 열망은 생명보다도더 귀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민족이 근대적 조국을 가지게 된 것은 3·1독립운동에서부터 그 발단을 찾아볼수 있다. 당시 2천만의 전민족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때 우리 민족 모든 사람의 가슴마다에 새 조국이 잉태된 것이다. 곧이어 해외에서는 국내의 3·1운동에 자극되어 그 새로운 민족국가건설의 의지로서의「대한의 독립」을 바탕삼아 상해 임시정부등 민주공화국형의 새 조국이 탄생된 것이다.

 

 

유럽에서도 「네이션」으로서의 조국(Patrie)은 프랑스 혁명 속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한 국가의 통치권원이 그나라의 「네이션」 즉 국민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주권재민을 규정한 헌정질서 아래서만이 근대적 국민이 성립되고 그들이 떳떳한 소속감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백성의 나라」 「국민의 나라」로서의 민주공화국이 아니면 안된다. 모든 시민이 동일한 법에 의해 보호되고, 동일한 이해에 의해 통합되고, 다같이 인간의 기본권을 누릴수있는 정치적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의 「조국」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민주헌정의 성립이 없이는 조국도 조국애도 있을 수 없게 되는것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정에서 크게 두가지의 조국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절대왕정에서 보는 절대주의 국가이고, 여기서는 충군애국형의 군주애, 또는 국가애만이 강요된다. 또 하나는 주권재민의 민주헌정을 본질로 하는 「내나라 의식」에서 생기는 새 조국이 있게 된다.개화 이후 우리 민족은 주로 대한제국 말부터 근대적 국가관의 형성에 힘썼다.

 

 

민족성 당위 조직적 음모

 

어떤 이는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들어 국란을 미리 방비할 수 있는 계책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빈약한 국력으로 큰 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병력을 양성했다 하더라도 그 병사들이 임금과 지배층을 위해 얼마나 열렬하게 목숨 바쳐 싸워주었을는지는 의문이다.

 

3·1운동 이후에도 만주 독립군속에는 왕조를 다시 찾아 왕정복고를 해야한다는 복벽파와 공화국형의 임정에 충성하자는 민국파가 대립되어 있었다. 의병계의 대한광복단은 그 취지서에서 군주의 원수를 갚고 군주국으로서의 대한제국의 복국을 주장했을 뿐만아니라 「상강대륜(常綱大倫)의 광복」이라 해서 주자학적 예교질서의 회복을 내세웠다.

 

이와반대로 임정계의 간도대한민국회(間島大韓民國會)측은 민국파로서 그 모병 「고유문(告諭文)」에서「임시정부 외에서는 피복벽주의단체(彼復辟主義團體)의 군인이 되어 죽는다면 하등의 가치도 없고 하등의 성공도 없다. 가치있고 성공있게 죽으려면 공화정부의 군적에 등록하고 공화정부의 군인이 되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3·1운동을 고비로 해서 우리 민족의 조국관은 왕국에서 민국으로 소수 지배계급의 나라에서 민국의 나라, 민족국가에로 옮아가게 된다. 8·15 해방후 비록 분단 상황에서나마 새로 탄생된 대한민국은 3·1독립정신과 그 민주공화국형의 새 조국관을 실현시킨 것이었고, 4·19혁명을 통해 반독재, 민주의 새 나라상이 거족적인 함성 속에 선명하게 부각된 것이다.

 

우리는 새 시대의 한국인이 가져야 할 새로운 조국관을 찾기위해서는 이처럼 3·1독립정신과 4·19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족사적 정통성을 외면하거나 벗어나 부국강병의 나라, 경제대국의 비전을 내걸어도 그것이 민주적으로 합의된 국가목표가 못되고 하향적인 공보(公報)목표일 때 어떻게 그것을 바람직한 조국의 상이라고 할수있겠는가.

 

일제 식민지 당국이 한민족에게 가한 가장 큰 죄악은 우리의 민족성을 왜곡하여 조직적으로 음모한 점이다.지금까지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사대주의적 성격론은 한민족의 근성이 사대적인것처럼 조작했고, 따라서 일제와 같은 침략자의 지배를 받거나 추종할 운명에 있는듯이 유도하려고 했다. 식민지 당국은 우리 민족이 단결심이 약한 민족이라고 조작, 선전하는 한편으로 수많은 항일결사를 적발해서 투옥, 파괴했다.

 

 

1980년 3월 8일 <朝鮮日報>

 

우리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떠해야 하나 - 새 시대의 한국인

2. 새로운 조국관 中

 

신일철(申一澈) 고려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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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18. 22:48

반만년 동안 여러 임금들께서 피땀을 흘려가며 지키고 보전한 금수강산을 강한 이웃나라의 침탈을 받아 빼앗긴 것이 마치 비둘기가 까치의 둥지를 차지한 꼴이 되어 버렸다. 반만년 동안 그 할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비호와 사랑스런 보살핌이 이어져 대가 내려갈수록 번성했던 신성한 후손들이 남에게 무참하게 짓밟히고 결국에는 주인의 자리까지 빼앗기는 수치를 겪게 되었다.

아! 슬프도다. 우리들은 충성스럽지 못한 백성이 되어 버렸고 온당치 못한 자식이 되어 버렸다. 무슨 생각으로 천지신명께서 감응하여 나타나시기를 바랄 것이며, 무슨 낯짝으로 지하에 계시는 돌아가신 조선 사람들의 영혼을 뵐 것이며, 무슨 염치로 여러 독립국의 자유민들을 대할 것인가?

 

다행히 옥황상제께서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시고 오랜 옛날부터의 조상의 영혼들이 저승에서 도와주시어 드디어 광복의 운세와 부활의 기회가 찾아왔다. 부끄러움을 머금고 욕됨을 참으며 10년 동안 마음 속에 칼을 갈아온 우리 이천만 동포는 우리들의 자유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세계에 통쾌하게 선포하고 있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세계의 눈과 귀를 놀라게 했다.

우리들의 행동이 문명적이고 정의로왔기 때문에 세계 여론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일찍이 없었던 문명적인 싸움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완고하고 사나우며 도의라고는 모르는 저 적들은 도리어 우리 정의의 군대를 폭도라고 하면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 우리 형제자매 가운데 사상자가 만여 명이나 되고 철창 속에서 해를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또한 얼마인가? 무릇 자유의 대가는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우리들은 세계에 대해서 조국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면해 보려고 한다. 비록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동포여! 유린되었던 강토를 회복한 이 날, 천만년 기념해야 할 이 날, 우리 형제는 이 날을 경축하면서 우리의 의로운 용기를 다시 발휘할지어다.

실행규약

1. 남녀 학생의 휴교는 물론 우리 동포는 일제히 자유롭게 만세를 외칠 것

1.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을 것.

대한민국 2년 3월 1일

대한민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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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12. 21:31

 

삼일절의 경축은 예년과 같은 정도의 무드 속에서 치러졌다. 근래의 예년이라는 것이 경원(敬遠)의 그것이어서, 일반 민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관공서나 은행 같은 데서도 버젓하게 국기를 달지 않아도 좋은 그런 무드이다. 그 흔하던 아치 하나 마련하지 않았다 해서 시민들이 비난한 데 대해서 당국은 그런 예산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아치는 외국 원수를 환영할 때만 세우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말한 당국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것이라면 그 임시정부를 낳게 한 3.1운동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를 가져온 씨라고 할 것이다. 혹 3.1운동이 없어도 독립해서 주권국가를 가질 수 있었다 해도 현실적으로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있는 대한민국은 3.1운동을 씨로 한 나라다. 외국원수 수사명이 한꺼번에 내방하는 날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삼일절이다. 그런데 그 삼일절은 점점 서자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로 하여금 3.1운동을 갖게 한 그 일본은 지난해를 <명치 100년>이라고 해서 크게 떠들썩하게 경축했다. 그들이 그렇게 찬미하고 경축한 명치 100년 속에는 한국 병탄도 들어있다. 설마 그 명치 100년의 눈치를 보느라고 3.1운동 50년을 허술하게 대접하기로 한 것으로는 보고 싶지 않지만, 상대방인 일본은 예년과 같은 정도의 삼일절 50주년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선인정신(善人精神)의 발휘로 볼 것인가, 비굴한 구걸로 볼 것인가.

 

일본이야 어떻게 보든 더 큰 문제는 우리 국민의 감회가 어떠한가에 있을 것 같다. 도하의 각 신문에 대대적으로 장식된 3.1운동 50년과 위정당국이 치러준 3.1절 50주년 사이에 있는 너무나 큰 공백을 보고 국민은 일종의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좌절감은 자칫하면 저항 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쉬워서, 오히려 잠자려 하던 반일정신을 자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삼일절의 경축이 아니고 3.1운동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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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은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개혁 진형 신문으로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1879년 창간된 이래 1920년대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이끌며 보통선거권과 여권 신장, 군비 증강 반대를 사시로 지지했으며, 이는 1936년 황도파 장교단에 의해 신문사 습격 사건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아사히신문 또한 1940년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대본영의 어용지로 전락한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치 1970년대~1980년대 군부 독재를 거치며 보도지침에 의거해 대통령의 정책에 거수기로 찬동을 표명하는 기사를 낸 한국 신문의 역사를 앞서 밟은 것이다.

 

 

그러한 아사히신문은 1945년 패전 이후 <스스로를 벌하는 말씀>을 통해 국민의 여론과 민의에 관계하는 언론사로서 전쟁 부역에 따른 참혹한 결과를 이끌어 낸 것에 대한 책임을 시인했으며, 동년 10월 24일에는 기존 임원진의 전원 사퇴와 사내 종업원 대의기구의 설치, 그리고 신문사 차원의 선언을 통해 민주주의 일본 건설에 대한 지지와 전쟁 옹호에 대한 사과문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아사히신문은 오늘날 일본 제2의 신문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민권 세력의 입장을 꾸준히 대변하고 있다.

 

한국의 신문은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에 따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된 이래 10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양 신문사가 독립운동과 반탁운동, 민주화운동, 문화 사업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에 깊숙히 관계하며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것에 대한 공은 인정해야겠으나 그와 마찬가지로 일제에 대한 적극적인 부역과 사주 일가의 신문 사유화, 독재정권 비호, 자본 및 권력과의 결탁은 한국 언론사의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양 신문사의 사가에는 '3.1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창간 100주년을 맞아 양 신문사는 저마다 특집 기획 보도를 연달아 내고 과거 100년의 역사를 자축하고 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선언한 지 101년, 새로운 2세기를 맞이함에 있어서 한국판 <스스로를 벌하는 말씀>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과도한 욕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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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7. 08:17

 

민족의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선 역사가 광복돼야 한다.특히 항일 민족 운동사와 고대사 부분은 이제부터 제대로 조명되고 가르쳐져야 한다. 최근에 이르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자는 논의가 일어난 것은 그런 뜻에서 의의가 크다. 그리고 고대사에 관한 학술 세미나에 반영된 국민적인 관심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이것은 모두가 민족공동체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보다 선명히 천명하고 바르게 인식하려는 열망의 표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사의 긍지와 정통성의 맥을 어떻게 연결짓고 이어받느냐 하는것이다. 가령 우리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보잘것 없는 변방의 후발 부족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말(韓末)에 와서는 역사의 생명줄마저 완전히 끊겨버렸다는 식으로 우리를 인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패배주의적인 역사인식은 근년의 여러가지 발굴과 문헌 연구에 의해 급속히 시정되고 있으며, 이것을 과연 어떻게 꿰느냐 하는 것만이 학계의 큰 관심사로 부상되기에 이르렀다.아직 정설로 확립되었는지의 여부는 학계가 알 일이지만, 적어도 동이계(東夷系)가 고대 동아시아의 한 강력한 문화적—정치적 단위였다는 주장은 갈수록 무시할수 없는 학문적 신설로 대두되고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그저 간판이었을 뿐」 이란 일부의 과소평가와는 달리, 그때의 이념적—실천적—제도적 비전들이 속속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컸다는 사실이 되짚어지고 있다.

 

우리가 만약 임정의 법통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1948년에 유엔에 의해 인공적으로 창조된 「시험관 아기」임을 자인하는 것밖엔 안된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창조주(?)를 그 때의 유엔 총회의 결의문 한 장에서 구해야한단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자기부정과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대한민국온 3·1 민족-민주-공화 혁명운동에 의해 성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 후계자라고 당연히 선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이 정통성의 맥을 감추고 끊으려 했던 친일파들은 우선 생물학적으로 역사의 무대로부터 스러져갔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우리 세대는 주저없이, 우리와 항일 민족운동사와의 감격적인 재상봉과 직결을 단행해야 하겠다. 중앙정부는 물론, 각 헌법기관들과 행정기관들을 비롯해 군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의 연혁과 역사를 임정과 광복군의 전통에 연결시키는 작업이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 바꾸기에그쳐서는 안되고, 그때의 이념과 정신 및 사관(史觀)을 실천적으로 되살려 내면화하는데까지 미쳐야 할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의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균열을 재통합시키는데 필요한 정당성 확립에도 절대적으로 유익하다.

 

사람은 물론 등 따습고 배불러야 산다. 그러나 일단 굶주림을 면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정당성과 도덕성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60~70년 대에는 그래서 전자의 명분으로 후자를 뒤로 미루어 버렸다. 그러나 80년대에 국민은, 특히 인구의 70%인 젊은 세대는 정치적 정당성의 확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충족시킴이 없이는 안정은 어렵다. 이러한 요청에서라도, 올해의 3·1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당한 법통을 오늘의 우리에게 직결시키는 작업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조선일보 1987.03.01. <正当性의 脈을 찾자 - 3·1節에 臨政法統 계승을 생각함>

출처 : 조선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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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3. 09:49

 

3.1절이 회갑을 맞았다. 기미년 3월 1일은 실로 한국 민족의 위대한 날이었다. 우리는 3.1절 회갑잔치를 크게 벌여야겠다. 남과 북, 동과 서가 한 자리에 모여 큰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지방색도 없애고 높고 낮음도 없이 함께 3.1절 회갑 잔치를 가져야 한다. 관이 주도한다거나 민이 주도한다거나 하지 말고 우리 모두 무조건 함께 축하해야 한다.북한 하늘엔 아직도 우리의 3.1절 축가가 메아리쳐 퍼지지 못해 크게 유감스럽다.

 

그런데 지나간 옛 사건을 기념하는 잔치만으로는 3.1절의 참 뜻을 바로 기리는 것이 아니다. 기념식이나 하고 그치려는 조야(朝野)의 태도는 어쩌면 3.1절을 모독하는 것 같아 보인다. 3.1절은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3.1정신을 계승하는 절기다.

 

그러므로 1919년 3월 1일의 운동은 1979년에도 다시 3.1정신 운동으로 불붙어야 한다.

 

민족적으로는 조선왕조 전제정치를 폐하고 민주공화정치의 현대국가 실현을 표명하며 사회적으로는 양반 귀족계급에 지배된 민중이 계급사회를 폐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자유사회의 실현을 제창하고 국제적으로는 일제 식민침략주의에 대항하여 민족 독립자존을 주장하며 나아가서는 한민족 내일의 사명이 아시아와 세계 인류의 자유평화증진에 기여할 것을 기약한 것이 3.1독립선언서에 나타낸 3.1정신이었다.

 

그러므로 그 뒤를 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은 조선조나 고려 혹은 신라 등 독재군주국가를 계승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배 왕조의 그릇된 통치의 전통을 혁파하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세워 한민족 내일의 기점을 삼은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3.1정신이 낳아 놓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민족역사의 정통성을 주장한다 함은 신라 왕조나 고려 조선 왕조를 계승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일제 군국주의 식민주의 잔재이리요. 그러므로 3.1정신의 계승은 첫째, 민권의 신장으로 민주국가를 수호함이며 둘째, 인간의 자유정신을 더욱 발양하여 개아(個我)의 인권을 확립함이며, 셋째, 편협한 국수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인류공동체에 협력하는 국제주의에로 한민족의 날개를 펴 웅비하는 정신이다.

 

실로 높고 넓고 깊은 진리의 나라 터전을 놓아 준 3.1정신이다. 이 3.1정신을 배반하는 3.1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서울神大 학장 趙香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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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어록2020. 4. 2. 23:12

우리 근대사의 정점이라 할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의 분위기가 이렇게 무관심해도 되는 것일까.

 


3.1정신의 계승이야말로 정부의 정신적 지주가 돼야 한다. 간단히 기념식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미리미리 각종 기념행사가 준비돼 3.1정신이 계승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로 유도해야 한다.

 

 



- 퇴색해가는 3.1절 (1982.03.01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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