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어른들은 투표장에만 갔다 하면 한나라당을 찍었고, 민주당을 향해선 '전라도당', '빨갱이'라는 험한 말을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민주당계 정당은 부산에서는 30% 정도 득표하면 선방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험지 그 자체였는데, 소위 낙동강 벨트라 불리는 북강서을 선거구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보수 도시' 부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부산의 선거史를 돌이켜 본다면 부산이 '보수 도시'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근 3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90년 삼당 합당 이전까지만 해도 총선거가 열리면 부산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이 언제나 신승을 거두었다. 특히 중선거구제하에서 선거가 치러진 1985년에는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호남 지역에서조차 스무 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는 단 세 석밖에 얻지 못하는 참패를 겪어야만 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총선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전체 15석의 의석 가운데 14석을 민주당이 싹쓸이할 정도로 부산은 민주당 계열에 우호적인 도시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부산은 4.19 의거, 부마항쟁,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에 있어 선두에 섰던 대표적인 야도(野都) 중 하나였다. 결국, 부산이 오늘날과 같은 보수의 도시가 된 것은 삼당 야합이 초래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6년 총선거는 보수화된 부산의 정치 지형을 뒤흔든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다섯 명이나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부산의 민심이 더이상 한나라당계 정당에 압도적인 표를 주지 않으며, TK와 같은 '텃밭'에서 '캐스팅 보트'라는 새로운 승부 지역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당계 정당이 부산에서 얻은 득표율은 낮게는 20%대에서 평균 30%대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부산에서의 민주당 의원의 당선은 '보수 도시' 부산의 시대도 어느덧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산은 민주당에 단 세 석의 의석만을 안겨주었다. 다섯 명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배출된 20대 총선과 비교하면 오히려 '퇴보'한 면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약간 다르다. 비록 의석수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민주당 후보가 부산에서 여럿 당선됐다는 점은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다수의 지역구에서조차 평균 40%대 이상의 표를 얻은 것은 민주개혁진영에 대한 부산 시민의 열망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를 '부산의 재보수화'로 단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산 지역에서 패배한 데에는 가덕도 신공항과 같은 부산 지역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민주당 정부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대형 상권 지역의 경기 침체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민주당 정권이 부산에 그만큼 공을 들인다면 민심이 다시 민주당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군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야도 부산'의 저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 저력을 키워 부산을 새로운 민주개혁진영의 선봉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민주당에 달려 있다.

 

Posted by 일간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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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어느 방송사도 중계하지 않은 씁쓸한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기공식이 서대문독립공원에서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 '화합과 단결', 그리고 '인류애'를 가져다 주었으며,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였음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할 것임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축사에서처럼, 임시정부는 반일독립을 넘어 자유평등, 총화단결, 인류공영의 가치를 추구한 민주공화국의 뿌리이자 법통이었다.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대내외에 천명된 지 어느새 101년, 독립과 산업화, 민주화의 100년사를 마감하고 이제 새로운 조국의 2세기로 나가는 도상에서, 우리는 새 시대를 개척할 첫걸음으로 총선거를 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임시정부의 정신과 가치는 단순히 독립건국이 제일(第一)의 과제였던 대일항쟁기를 넘어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사료된다. 임시정부의 국시였던 삼균주의는 개인과 개인의 평등, 민족과 민족의 평등,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추구하며 세계 여러 나라가 함께 어울려 사는 '세계일가'(世界一家)를 지향했다. 참정권을 폭넓게 보장하여 정치적으로 균등을 실현하고,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의 통제, 중소산업의 민영화로 경제적 기회의 균등을 이루고, 국비 교육을 통해 누구나가 배움으로써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코로나19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신자유주의의 광란 속에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부(富)에 따른 신 계급제가 등장한 오늘날의 사회에서, 임정 선열들이 내세운 인류공생의 가치와 만민평등의 정신은 더욱 절실한 '오래된 미래'다.

 

 

친일이 아닌 독립운동이 대한민국의 주류라는 구절은 새 시대의 국회가 받들어야 할 국가의 정체성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다. 지난 건국 101년의 역사는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헌법과 정부를 수립하고, 국민의 역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빛의 역사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헌법은 반민특위의 해체와 부일배(附日輩)의 집권으로 더럽혀졌고, 군사독재 하에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억압받았으며,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빈부격차는 날로 심각해지고 청년은 절망과 무의욕 속에 경제 계급제에 물들어갔다. 임시정부가 지향했던 가치와는 정반대로 나갔던 지난 날의 모습은 국가정체성의 위기 그 자체였다. 이번 총선거가 국체(国体) 수호의 선거인 이유다.

 

이번 총선거는 임시정부가 그린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구현할 일꾼을 선출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제시한 자유평등과 평화번영이라는 국체의 가치를 수호할 것인가, 아니면 친일·군사독재 세력의 반국가(反国家) 이념을 확산시키고 조국의 뿌리를 뒤엎을 것인가. 코로나19 속 흔들림 없는 방역과 민주주의의 수호로 세계를 이끄는 선두가 된 대한민국이 나갈 길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현명한 애국 국민들은 정로(正路)를 알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일간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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